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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생물학의 역사

by 리원준 2022. 12. 20.

안녕하세요 오늘은 생물학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생물학은 생명 현상과 살아있는 생명체의 물리적 구조, 화학적 과정, 분자적 상호작용, 생리적 메커니즘, 발생과 진화의 관한 연구를 하는 자연과학입니다. 과학의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일관된 분야로 통합하는 공통 개념들이 있는데, 세포를 생명체의 기본 단위로 하는 생물학, 유전의 기본 단위고, 진화를 생물 종들의 출현과 멸종을 추진하는 수단으로 인정하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항상성으로 정의되는 안정되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변환 및 부분적 엔트로피를 감소함으로 생존해 가는 개방계입니다. 연구방법과 목적에 따라 생물학의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는데, 생화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생리학, 생태학 등이 있습니다. 생화학은 생물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현상을 연구하고, 분자생물학은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을 탐구하고, 세포생물학은 세포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을 다루고, 생리학은 기관이나 조직을 연구대상으로 삼으며, 생태학은 환경에서 다양한 생물 개체들이 맺는 관계를 탐구합니다.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정량적 모델을 만드는 이론 생물학이 있는가 하면, 제안된 이론의 타당성을 테스트하고, 생명체의 출현과, 생물 체계의 복잡성을 어떻게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경험적 실험을 수행하는 실험생물학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역사에는 생물학이라는 단어는 본래 그리스어 "βίος"(bios, "life", "생명"이란 뜻)와 접미사 "-λογία"(-logia, "study of", "-학(學)"이라는 뜻)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생물학이라는 단어의 라틴어 형태는 스웨덴의 과학자 칼 폰린네가 1736년 그의 저서 [Bibliography of botany, 식물학 문헌]에서 "biologi"를 사용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독일의 박물학지인 고트프리트 라인홀트 트레비라누스는 "우리의 연구 대상은 생명의 다양한 형태와 발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조건과 법칙, 그리고 그것들을 초래하게 한 원인에 있다. 우리가 생물학이라는 이름이나 생명의 교리로 나타낼 과학은 이러한 연구 대상들과 관련된 과학이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발전돼 온 현대적 생물학이지만, 생물학에 관련되고 포함되는 과학은 고대부터 연구되어 왔습니다. 일찍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의 고대 문명에서 자연철학은 연구되었지만, 현대 생물학의 기원과 자연 연구에 관한 접근 방식은 대거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 ~ 370년 경)로부터 의학의 정식 연구가 시작되었으나, 생물학 발전의 가장 큰 공헌을 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년 ~ 322년)였습니다. 그의 [동물지]와 자연주의 성향을 보여준 많은 작품들과, 생물학적 인과 관계와 생명의 다양성에 초점을 둔 경험을 바탕으로 둔 작품들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설한 리케이온 학원의 후계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학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들은 고대의 중요한 공헌을 하였고, 중세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이슬람 세계의 학자들로 인해 생물학은 중세 이후에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는데, 알 자히즈(781년 ~ 869년), 아부 하니파 디나와리(828년 ~ 896년)는 식물학에 대한 저서를 남겼고, 알 라지(865년 ~ 925년)등은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리스 철학자의 전통을 배경으로 연구한 이슬람 학자들에 의해 의학이 연구되었고, 고정된 생명체들의 계층 구조를 당연하게 여겼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의해 박물학은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안톤 판 레이우엔훅에 의한 현미경 성능의 개선과 함께 생물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학자들은 정자, 세균, 적충류, 미생물 등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얀 슈밤메르담이 한 연구는 곤충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현미경적 해부와 염색의 기본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현미경의 기술은 19세기 초에도 생물학적 사고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많은 생물학자들이 세포의 중요성을 지적하였습니다. 독일의 생리학자인 테오도어 슈반은 1839년 "모든 동물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동물 세포설을 주장하였고, 슐라이덴과 슈반은 "세포는 모든 생물의 구조적 단위이며, 생명활동이 일어나는 기능적 단위"라는 세포설을 제창하였습니다. 독일의 생물학자 루돌프 피르호는 1855년 "세포는 기존의 살아있는 세포로부터만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1860년에 이르러 로베르트 레마크와 루돌프 피르호의 연구 덕에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세포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한편, 많은 박물학자들이 초점을 기울인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분류학 및 분야였습니다. 1735년 칼 폰 린네는 자연계에 대한 기본적 분류 체계를 발표했고, 1750년대 그가 분류한 모든 종에 학명을 부여하였습니다.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은 생물 종들을 인위적 범주로 취급하였고, 생물의 형태를 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공통 조상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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